'조건 만남' 빌미로 쿠폰 활성화 비용 등 챙겨

지난달 15일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 있는 범죄 단지로 추정되는 건물. 쇠창살로 막혀 있는 곳이 눈에 띈다. 시아누크빌=허경주 특파원
캄보디아에서 '로맨스 스캠'(연애 빙자 사기) 조직의 유인책으로 활동한 한국인 남성 2명이 실형을 선고받았다.
부산지법 형사 12단독 지현경 판사는 사기, 범죄단체 가입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30대 남성 A씨에게 징역 4년에 추징금 2,200만 원, 20대 남성 B씨에게 징역 3년에 추징금 2,000만 원을 선고했다고 2일 밝혔다.
A·B씨는 지난해 5~6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캄보디아 현지 구인 공고를 보고 출국한 뒤 로맨스 스캠 조직에 가입해 그해 10월부터 7개월간 유인책 등으로 활동한 혐의를 받는다.
이들은 텔레그램 등을 통해 피해자에게 여성을 소개해 주는 업체 실장이라며 접근한 뒤 “우리 사이트에 가입하면 조건만남을 할 수 있다”고 속여 쿠폰 활성화 비용 명목 등으로 송금을 요구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과정에서 20명이 모두 8억4,000만 원의 피해를 봤다. A씨는 간부급으로 활동하며 유인책의 교육과 관리를 총괄한 혐의도 받는다.
중국인 총책은 2014년 10월 문제의 조직 사무실을 캄보디아 차이퉁에 차렸다가 두 달 뒤 시아누크빌로 옮겨 운영을 계속한 것으로 파악됐다. 교육은 한 카지노 건물 사무실에서 이뤄졌고, 서로 가명을 쓰면서 매일 12시간씩 근무하는 등 엄격한 규율이 적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조직 이탈을 막기 위해 가입 후 3개월 동안 탈퇴를 원하면 2만 달러의 벌금과 범행에 필요한 프로그램 세팅비 ‘개바시’를 물게 했다.
조직 운영 방식은 기업과 비슷했다. 상급 조직원이 다른 조직원의 근무 태도, 외출, 실적 등을 상부에 보고하고 실적이 부진한 조직원을 질책하거나 격려했다. 급여는 매월 15일 직책별로 2,000~8,000달러 수준으로 지급됐다. 입금된 피해 금액에 따라 특전(인센티브)도 주어졌다.
지 판사는 “피고인들은 범행 가담 정도가 중하고, 로맨스 스캠 사기 범행은 사회적 해악이 매우 심각하므로 엄히 처벌할 필요가 있다”며 “범행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점, 일부 피해자와 합의가 이뤄진 점 등을 참작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