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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파도 높을수록 한배 타야”…트럼프 떠난 APEC서 미국 직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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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11년 만에 국빈 방한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31일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연설에서 “중국의 문은 결코 닫히지 않을 것”이라며 자유무역체제와 다자주의 수호를 강조했다.

미국을 직접적으로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이는 일방주의와 보호주의를 추구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를 겨냥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시 주석은 이날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포용적 발전” “무역과 투자의 자유화와 원활화”를 제시했다. 이틀 전 미국의 위대함과 세계 각국의 대미투자 성과를 과시하며 “관세를 부담하고 싶지 않다면 미국에 공장을 지으라”고 외쳤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APEC 최고경영자(CEO) 서밋 기조연설과 온도 차가 확연했다.

시 주석은 “현재 세계는 100년에 한 번 있을 법한 대변화가 가속화되고 있다”며 “국제 정세는 복잡하고 불안정하다”고 운을 뗀 뒤 “이에 맞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경제 환경을 공동으로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실상 미·중 무역전쟁과 기술 패권경쟁이 거세지는 가운데 미국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 견제를 강화하는 상황을 에둘러 지적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APEC의 창립 정신인 경제 성장과 인민(국민)의 삶의 개선이라는 사명을 잊지 말고 모두가 기회를 공유하고 함께 이익을 얻는 개방형 발전을 추구해야 한다”면서 “진정한 다자주의를 실천하고 세계무역기구(WTO)를 핵심으로 하는 다자무역체제의 권위와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WTO 개혁과 관련해서는 “시대 변화에 부합하는 국제경제, 무역 규칙을 갱신해 개발도상국의 합법적 권익을 더욱 잘 보호해야 한다”고 했다. 이는 미국과 달리 관세나 비관세 장벽을 통해 개도국의 발전을 저해하는 ‘사다리 걷어차기’를 하지 않겠다는 의미로도 읽힌다.

이와 관련해 시 주석은 “외교 관계를 맺은 최빈국에 대해 100% 무관세 혜택을 부여했다”며 “외교 관계를 맺은 모든 아프리카 국가로 (혜택을) 확대하기 위해 ‘공동 발전을 위한 경제동반자협정’ 체결을 추진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아울러 “보다 포용적이고 지속가능하며 모든 국민에게 혜택을 주는 경제 세계화”를 재차 강조했다. 미국이 관세 장벽을 높이고 있는 사이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ASEAN)이나 아프리카 등과 경제적 밀착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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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주석은 이날 무역·투자 자유화와 재정·금융 협력을 강조하며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아시아태평양자유무역지대(FTAAP) 발전에 무게를 실었다. 무역과 관세를 자국의 국가안보 관점에서 사실상 ‘무기화’하는 미국과 차별화를 통해 국제사회에서 의제 설정력을 높이겠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그는 연설에서 “중국은 개방을 국가 기본 정책으로 확고히 견지하고 있으며, 개방형 세계경제 건설을 위해 실제적인 조치를 취해 왔다”면서 “22개의 자유무역시험구(FTZ)를 통해 고표준 국제경제, 무역 규범에 적극적으로 정합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 주석은 “산업망, 공급망 안정을 함께 지키자” “무역 디지털화, 녹색화를 함께 추진하자” “보편적·포용적 발전을 함께 촉진하자”는 등의 제안도 내놨다.

반면 앞서 트럼프 대통령이 했던 APEC CEO 서밋 기조연설은 자신이 취임 이후 9개월간 만든 ‘위대하고 부강한 미국’을 설명하는 데 중심이 쏠려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9일 연설에서 “1년 전만 해도 미국은 매우 심각한 곤경에 처해 있었지만 내가 취임한 후 힘을 되찾았다”고 자랑했다. 그는 올해 초 자신이 취임한 이후 18조달러에 이르는 대미투자를 확보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특히 미국이 3.8%에 이르는 2분기 국내총생산(GDP)을 달성한 것과 연일 최고치를 기록 중인 뉴욕 증시 상황을 소개해 시 주석의 연설과 대조를 이뤘다.

시 주석과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 내용 가운데 가장 입장이 엇갈린 지점은 역시 ‘관세’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미국)는 관세를 무분별하게 사용한 것이 아니다. 이제 우리는 국가 안보를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관세를 통해 만성 적자에 시달리는 국가재정을 개선하고 미국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했다며 자화자찬한 것이다.

그는 “관세는 우리 동맹을 강화할 뿐만 아니라 세계 평화를 가져오고 있다”고도 강변해 눈길을 끌었다. 자신이 관세를 무기로 국제 분쟁에 관여해 세계 곳곳에서 평화를 이끌어냈다는 이야기다.

다자 정상외교 연설에서 자신과 통화정책에서 반목하고 있는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을 ‘너무 늦은 제롬(Jerome too late)’이라고 지칭하며 비난한 것 역시 시 주석은 물론 다른 정상 연설에서 찾아보기 힘든 언사다.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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