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CPI, 예상치 하회···10월 금리인하 기정사실화
'대침체' 한국은 부동산 충격에 李정부 내내 동결
핵심지 거래 막고 외곽만 공급···서민 대출만 옥죄
5년간 盧·文 실패 답습 뻔해···금융시장 꼬일 수도
연준 돈풀기 초읽기···3년만 한미 금리차 최소 눈앞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3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금융통화위원회 금리 결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이 0%대 초저성장 국면에 진입한 상황에서도 집값 폭등, 원·달러 환율 급등으로 기준금리를 내리지 못하는 가운데 한미 금리 차이가 3년 만에 가장 적은 수준으로 좁혀질 상황을 맞았다.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이미 3년 만의 양적 완화 전환을 공언한 상황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에도 미국 물가상승률이 예상 범위에 머문 것으로 나오자 글로벌 금융시장은 이달 28~29일(현지 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0.25%포인트 금리 인하를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만약 금통위가 11월 27일 올 마지막 회의에서도 한국 기준금리를 2.50%로 동결하고 연준은 올해 안에 0.50%포인트를 더 내려 3.50~3.75%로 낮출 경우 이는 2022년 3월 이후 2년 9개월 만에 한미 금리가 최소 격차로 좁혀지는 결과를 낳는다. 인구·경제 대국인 데다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무역까지 겹쳐도 2%대 성장률을 구가하는 미국조차 경기 부양을 위해 금리를 내리는데, 0%대 한국만 부동산 정책 실패 문제로 금리를 못 내리는 상황이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는 시각에 힘이 실리고 있다. 미국이 본격적으로 양적완화에 돌입하고 내년 연준 의장 교체 뒤 11월 3일 중간선거 전까지 경기 부양에 더 힘을 쓸 경우 넘쳐나는 유동성에 한국 집값은 더 올라가 금리 결정도 꼬일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이 경우 경제는 심각한 부담을 떠안지만, 정권 차원에서는 문재인 정부 때처럼 집값 급등 문제를 자체 정책 실패가 아니라 미국의 통화정책 탓으로 돌릴 수 있는 핑곗거리는 생긴다.
파월 양적완화 시사에 미국 CPI도 예상치 하회…美증시 사상 최고, 10월 금리인하 기정사실화

제롬 파월 연준 의장.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노동부는 24일(현지 시간) 9월 미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0% 상승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8월(2.9%)보다는 살짝 높은 수치이지만 다우존스가 집계한 전문가 전망치(3.1%)보다는 낮은 수준이었다. 전월 대비 상승률은 0.3%로 이 역시 전문가 예상치(0.4%)보다 낮았다.
변동성이 큰 에너지·식품을 제외한 근원 CPI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3.0% 올라 8월(3.1%)보다도 상승률이 둔화했다. 전월 대비로는 0.2% 상승했다. 미국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지난 4월 2.3%까지 둔화했다가 이후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이 본격화하며 상승 흐름을 보이고 있다.
이날 CPI는 당초 이달 15일 발표 예정이었다가 미국 연방정부의 ‘셧다운(일시적 업무정지)’ 사태 때문에 이날로 미뤄졌다. 미국 사회보장국의 내년도 연금 지급액 산출에 CPI가 필수적이라는 점에서 해당 직원들만 업무에 복귀시켰다. 소비자물가와 함께 노동통계국(BLS)이 산출하는 핵심 통계인 9월 비농업 고용보고서는 이달 3일 공개 예정이었다가 무기한 지연하고 있다.
9월 CPI 결과는 애초부터 이달 28~29일 FOMC 회의에서 연준이 금리를 내릴 것으로 기대한 시장 참여자의 기대에 확인 도장을 찍은 셈이 됐다. 이날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1.01%,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0.79%, 나스닥종합지수는 1.15% 상승하며 일제히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앞서 파월 의장은 지난 14일 미국의 실업률이 상승 전환할 가능성을 조기에 차단하겠다며 몇 달 안에 통화정책을 양적완화(대차대조표 확대)로 전환하겠다고 예고했다. 코로나19 대유행(팬데믹)이 끝난 직후인 2022년 6월 이후 3년 남짓 지난 시점에서 양적긴축(대차대조표 축소)을 끝내겠다는 선언이었다. 연준은 지난달 FOMC에서도 0.25%포인트 금리 인하를 단행했다. 이는 지난해 12월 이후 9개월 만이고, 트럼프 대통령 재집권 이후로는 첫 금리 인하였다.
24일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연방기금금리 선물 시장은 연준이 이달 FOMC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할 확률을 96.7%로 반영했다. 연준이 현 4.00~4.25% 금리를 그대로 동결할 가능성은 3.3%에 그쳤다. 금융 시장은 나아가 연준이 올 연말까지 기준금리를 0.50포인트 내릴 확률을 92.2%로 반영했다.
9월 CPI까지 예상치를 벗어나지 않으면서 당분간 이 관측을 방해할 장애물은 없는 상태다. 무역 협상 변수가 크지 않다면 말이다. 최근 미국 지역은행 대출 부실 문제가 확산하는 점도 금리 인하에 힘을 싣는 부분이다.
‘대침체’ 한국은 부동산 충격에 李정부 내내 동결…0%대 성장에도 경기부양 못해

24일 서울 노원구 상계주공 5단지와 일대 아파트 모습. 연합뉴스
미국은 기준금리를 내리기 시작했는데 정작 한국은 현 2.50%에서 한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3500억 달러(약 500조 원)에 달하는 대미 투자 요구로 원·달러 환율이 1440원까지 치솟은 영향도 있지만, 금리 동결 장기화의 핵심 요인은 부동산이다.
한국은행은 지난 23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기준 금리를 연 2.50%로 유지하기로 또 다시 결정했다. 7·8월에 이어 벌써 3연속 금리 동결이다. 이재명 정부 들어서는 한 번도 내리지 못했다. 지난 14일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올해 한국의 예상 경제성장률은 0.9%다.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인 3.2%는 물론 미국의 2.0%보다 한참 낮다. 한은 역시 지난 8월 한국의 예상 성장률을 0.9%로 전망했다. 예측이 현실화될 경우 1998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이보다 확실히 낮았던 적은 27년 동안 코로나19 대유행 시기인 2020년 밖에 없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과 비슷한 수준이다. 경제 침체 문제의 원인을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언과 탄핵 사태로 아무리 돌린다 해도 통화정책을 통한 경기 부양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는 점은 바뀌지 않는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23일 기자간담회에서 “수도권 주택 시장에 다시 과열 조짐이 나타나 정부가 추가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는데, 통화정책으로 집값 상승 기대를 자극하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며 “환율도 단기간 변동성이 크게 확대됐다”고 설명했다. 이 총재는 그러면서 “부동산 가격 상승이 우리 성장률을 갉아먹고 있다”며 “고통이 따르더라도 부동산 구조 개혁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정부는 정권 초부터 수도권 주택 담보 대출을 6억 원으로 제한하는 이른바 ‘6·27 대책’, 수도권과 규제 지역 집값을 15억 원·25억 원 등으로 나눠 대출을 2억 원·4억 원으로 제한하는 ‘10·15 대책’을 잇따라 내놓으며 부동산 시장에 역효과를 초래했다.
토지거래제한구역도 대폭 확대했다. 전 대통령 탄핵 사태로 수습해야 할 일이 많음에도 부동산 시장에서 뭔가 보여줘야 된다는 조바심을 내는 방식으로 문재인 정부를 그대로 답습했다. 경기도 외곽 그린벨트를 풀어 별 수요도 없고 교통편도 부족한 지역에 서민형 저가 소형 아파트만 짓는 걸 공급 대책인 것처럼 여기는 점도, 대책을 발표할 때마다 막차를 타겠다며 매수 수요가 불나방처럼 늘어나는 점도 노무현·문재인 정부 때와 똑닮았다.
실제 수도권 아파트 가격은 정부의 고강도 대책에도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23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 20일 기준 주간 서울 아파트 매매가는 0.50% 뛰어 2012년 통계 작성 이후 최고치를 경신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8년 9월 첫째 주에 기록한 0.47%를 뛰어넘었다. 규제 강화로 기존 주택을 팔고 싶어 하는 수도권 핵심지 집주인 자체가 줄어드는 게 ‘공급 감소’의 최대 핵심인데 이는 공급 대책으로 취급하지 않은 효과다. 20~30년 된 집이라도 서울 핵심 지역에 한 채가 시장에 매물로 나오는 것과 아무리 새 집이라도 수도권 외곽에 수 만 호를 짓는 효과는 하늘과 땅 차이인데 똑같은 주택 공급이라며 숫자만 세는 게 지금까지의 정부 계산법이다.
다주택자 때린다고 집값 안 떨어지는 경험 盧·文 때 충분…한미 금리차 최소 눈앞

전세를 끼고 집을 사 이른바 ‘갭투자’ 논란에 휩싸인 이상경 국토교통부 1차관이 23일 국토부 유튜브 계정을 통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있다. 이 차관은 논란 속에 24일 결국 사의를 밝혔다. 연합뉴스
관가에서는 이재명 정부가 이제 겨우 반년도 안 됐다는 점에서 문재인 정부 때처럼 앞으로 5년 간 고강도 부동산 대책을 쉬지 않고 내놓을 가능성을 높이 보고 있다. 다주택자와 부유층의 거래를 막으면 부동산 가격이 안정화될 수 있다는 전통적 여권 지지자들의 맹신을 외면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부동산 정책 실패로 정권을 내준 노무현·문재인 정부 때의 트라우마와 피해 의식이 현 정부를 또 다시 조급하게 몰고 있다는 의심도 있다. 이 같은 부동산 시장 접근법은 관세를 부과하면 국가가 부유해진다는, 학문적 근거가 없는 트럼프 대통령 식 경제학과 다를 바 없다. 시장경제는 인간의 이기심을 전제로 작동하는데, 누구나 살고 싶어 하는 지역에는 고강도 규제만 쏟고 많은 이가 웬만하면 살고 싶어 하지 않는 지역에만 대규모로 주택을 공급해서는 무엇도 해결되기 어렵다. 서울 핵심지 주택만 희소해져 명품처럼 될 뿐이다. 고스득층과 부유층은 문재인 정부 이후 이어진 겹겹 규제로 이미 현금으로만 주택을 거래한지 오래됐는데, 서민과 청년층의 대출을 옥죄는 정책을 해법이라고 주장하는 인식도 이전 정부와 똑같다. 정부가 지금처럼 시장에 ‘심리’라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애써 무시하거나, 강도가 더 센 규제책을 내면 낼수록 집값은 치솟는다는 시장 원리를 이해하지 못할 경우 금융 당국의 적절한 금리 결정은 5년 내내 기대하기 힘들어진다.
더 큰 문제는 연준이 내년 이후 통화 완화 정책에 속도를 낼 수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내년 5월 퇴임하는 파월 의장의 후임을 금리 인하에 적극적인 친(親)백악관 인사로 앉힐 가능성이 높다. 내년 11월 3일 중간선거까지 이미 38조 달러(약 5경 4700조 원)를 넘어선 연방 재정적자를 줄이고 관세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시중에 달러를 더 풀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한국 사람들은 규제 폭탄과 글로벌 유동성 확대 효과가 맞물렸을 때 서울 집값이 얼마나 폭등했는지, 그 결과 사회 양극화가 얼마나 심각해졌는지는 코로나19 시기 때 충분히 겪었다. 코로나19 대유행 때인 2021년 5월 서울 아파트 값은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5월의 두 배 수준으로 솟구쳤다. 이는 그해 민주당의 4·7 서울·부산시장 재보선 참패와 이듬해 정권 재창출 실패로 직결됐다. 정부 인사들과 여권 지지자들이 정책 실패 얘기는 쏙 뺀 채 마지막까지 미국 유동성 탓만 한 결과였다. 파월 의장이 양적완화 본격 전환을 예고한 “몇 달 뒤”는 공교롭게도 현 정부 부동산 대책의 효과가 시장에서 확인될 즈음이다.
각국의 기준금리가 그 나라의 잠재 성장률을 따른다는 점을 감안하면 부동산 문제로 금리 인하 속도가 너무 더뎌질 경우 국내 금융의 시장 경쟁력까지 꼬일 수 있다. 올해 연준의 FOMC 회의는 12월 9~10일, 한은 금통위는 11월 27일 한 차례씩만 남았다. 현 시장 예상대로 미국의 기준금리는 3.50~3.75%로 인하, 한국은 2.50%로 또 다시 동결된다면 내년 양국의 성장률 격차는 더 벌어질 수도 있다. 현 저성장의 문제는 기술 혁신이나 통화정책 없이 대국민 지원금 쿠폰 배포나 전 정권 탓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저성장 기조가 장기화하면 재정정책으로 경기를 부양할 여력도 자연히 줄어든다.
부동산이 아니어도 한국은 금리 결정에 관세 등 대형 외부 변수까지 떠안은 상태다. 분할 납부든 일시불이든 만약 3500억 달러 현금성 대미 투자를 전제로 한미 관세 합의가 전격 타결될 경우 환율 문제로 국내 금리는 내리기가 더 어려워진다.
서울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