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내 ‘가상자산 2단계’ 입법 추진…분업구도 윤곽
금감원, 카드사 면담…결제·유통 역할 검토 중
보안사고 여파 속 ‘신뢰 회복’이 제도권 진입 관건
가상자산 제도화 2단계 입법이 임박한 가운데 금융감독원이 카드사를 상대로 스테이블코인 관련 사업 현황을 점검하고 있다. 금융위원회가 연내 법안 제출을 예고한 뒤 감독 방향을 사전에 준비하려는 차원으로 풀이된다. 업계에선 은행 중심의 발행 구조가 유력한 가운데 카드사에 결제·유통 역할을 부여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감원은 최근 주요 카드사를 대상으로 스테이블코인 관련 사업계획과 기술 준비 상황을 파악 중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가상자산 이용자보호법 2단계 법안이 11월로 다소 늦어질 수 있지만 금감원은 원장 지시로 삼성·하나·비씨·현대·우리카드 등을 순회 면담하고 있다”며 “감독 방향 설정과 카드사 역할 검토가 목적이다”고 말했다.
이찬진 금감원장은 스테이블코인 제도화 과정에서 전통 금융사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비 금융사나 빅테크 참여를 폭넓게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과 상반된 시각이다. 금융위 역시 은행 중심의 발행 구조를 검토하고 있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국정감사에서 “스테이블코인의 이자 지급은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은행이 주도하는 안정적 관리체계를 마련하겠다”며 “핀테크 기업은 기술 파트너로 참여하는 형태를 모색 중이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은행은 합작법인을 통해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고 카드사는 결제 인프라를 맡는 ‘분업형 모델’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은행이 발행하고 카드사는 가맹점 결제망을 통해 유통하는 역할이 가능하다”며 “카드사의 가맹점 네트워크는 스테이블코인 확산의 핵심 인프라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카드사도 발 빠르게 대응 중이다. BC카드는 지난달 스테이블코인 결제 처리 기술을 특허 출원했다. 거래소별 시세 차를 실시간 반영해 고객의 잔고에서 차감하는 시스템으로, 블록체인 결제 인프라 구축의 선제적 포석으로 평가받는다. 하나카드는 블록체인 인프라 기업 EQBR과 전략적 업무협약(MOU)을 맺고 스테이블코인 결제 시스템 구축에 나섰다.
일부 카드사는 금융당국에 스테이블코인 발행과 유통을 겸업할 수 있도록 허용해 달라는 건의도 전달했다. 금융권에선 스테이블코인 제도화가 속도를 내는 만큼, 카드사가 ‘유통 허브’로서 핵심적인 위치를 점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일부 카드사에서 발생한 해킹 사고로 대규모 고객정보가 유출되면서 카드업계의 보안 취약성과 신뢰 문제가 다시 수면위로 떠올랐다. 업계는 금융의 본질은 신뢰라는 말을 체감하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이 단순 결제수단을 넘어 금융 생태계의 기반 인프라로 확장하는 상황에서 정보보호는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라 존립의 전제조건으로 인식되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보안사고 이후 카드사가 스스로 신뢰 회복에 나서야 제도권 내 역할을 인정받을 수 있다”며 “보안 역량이 곧 시장 진입 자격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이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