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킹스!’ 미국 전역 들썩인 반 트럼프 시위…“역사상 최대 규모”

다크게임 2025.10.19 08: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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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중심 펜실베이니아 에비뉴에는 ‘노 킹스(No Kings)’ 시위에 참석하려는 수만명의 사람들이 몰렸다. 워싱턴/김원철 특파원

 

“미국에는 왕이 없다.”

18일(현지시각) 낮 12시. ‘노 킹스(No Kings)’ 시위가 열린 미국 워싱턴 중심 펜실베이니아 에비뉴는 수만명의 사람들로 가득 찼다. 워싱턴을 동서로 가로지르며 백악관과 국회의사당을 잇는 왕복 6~8차선 도로에 몰려든 인파로 시위대 행렬은 국회의사당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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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중심 펜실베이니아 에비뉴에는 ‘노 킹스(No Kings)’ 시위에 참석하려는 수만명의 사람들이 몰려든 가운데 다람쥐, 유니콘, 공룡, 외계인 등의 복장을 한 참가자들도 눈에 띄었다. ‘시위대는 테러리스트’라는 트럼프 행정부의 주장을 조롱하기 위해, 오리건주 포틀랜드의 활동가들이 처음 착용한 개구리 복장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김원철 특파원

 

■참가자, “시위 참석 확인될까 두려워 현금 사용”

메릴랜드주 몽고메리 카운티에 거주하는 ㄱ(68)씨는 한겨레와 만나 “시위 참여 사실이 추적될까봐 무서웠다”며 이날 지하철을 탈 때 신용카드를 쓰지 않고 현금으로 메트로 카드를 구매했다고 밝혔다. 그는 “1980년 페루에서 이민 왔을 때와 지금의 미국은 너무 다르다”며 “서류 미비 이민자들도 세금 내고 미국 사회에 기여하지만 비인간적으로 대우한다. 워싱턴에서 케이터링 일을 하는 싱글맘인 친구는 출근이 두려워 실직했다. 개인적으로도 직장과 일상에서 인종차별로 인해 위협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시민이지만, 시민권 박탈 두려움 때문에 사진 촬영과 이름 제공을 모두 거부했다.

시위 참가자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왕처럼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 단속 강화, 민주당 주 도시들에 대한 군대 투입, 언론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위협 등이 이날 시위의 핵심 주제였다.

메릴랜드주 프린스 조지스 카운티에서 초등학교 4학년 교사로 일하는 마거릿 놀런(54)은 한겨레에 “트럼프는 다른 정부 기관들로부터 권력을 빼앗으려 한다. 미국 헌법이 말하는 바가 아니다”라며 “자주 미국인을 상대로 주방위군을 동원한다. 군대를 자국민에게 사용하는 건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에 어긋난다”고 말했다.

은퇴한 은행원인 로저(77)는 트럼프의 경제 정책을 비판했다. 그는 한겨레에 “트럼프는 경제에 대한 이해가 매우 부족하다. 트럼프의 관세 정책은 미국의 이익에 맞지 않는다. 일자리를 없애며, 동맹국들의 일자리는 더 많이 없앤다”고 비판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없앤 미국국제개발처(USAID) 계약직으로 일했던 ㄴ씨는 “인류가 직면한 가장 큰 도전 중 하나가 기후 변화다. 이 정부가 이를 다루는 방식은 세계 역사상 가장 큰 거버넌스와 리더십 실패 사례”라며 “미국이 잘못된 방식으로 통치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다람쥐, 유니콘, 공룡, 외계인 등의 복장을 한 참가자들도 눈에 띄었다. ‘시위대는 테러리스트’라는 트럼프 행정부의 주장을 조롱하기 위해, 오리건주 포틀랜드의 활동가들이 처음 착용한 개구리 복장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어린아이를 동반한 가족 단위 시위자들이 동물 복장 참가자들과 어울리면서 축제 같은 모습을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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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중심 펜실베이니아 에비뉴에는 ‘노 킹스(No Kings)’ 시위에 참석하려는 수만명의 사람들이 다양한 팻말을 들고 있다. 워싱턴/김원철 특파원

 

■“현대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 시위”

이날 미국 전역 2600개 이상의 도시와 마을에서 트럼프 행정부를 비판하는 ‘노 킹스’ 시위가 열렸다. 여러 진보 성향의 전국 조직들과 지역 단체들이 모인 주최 쪽은 ‘현대 미국 역사상 단일 시위 중에선 최대 규모 인파’라고 분석했다.

뉴욕 타임스퀘어에도 수천 명이 모여 “나는 어떤 왕에도 충성을 맹세하지 않는다”는 문구가 적힌 팻말을 들고 행진했다. 뉴욕 경찰은 5개 자치구에서 열린 집회에 약 10만명 이상이 참여했으며, 시위는 평화롭게 종료되었고 체포자는 없었다고 발표했다.

보스턴 시위에서는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이 “평화 시위는 진정한 애국 행위”라고 강조하며 수천 명 앞에서 연설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을 “약하고 비열한 자”라고 지칭하며 “우리는 왕도, 폭군도, 트럼프도 섬기지 않는다. 미국 국민은 굴복하지 않는다”고 외쳤다. 미국 독립전쟁의 첫 총성이 울린 장소인 매사추세츠 렉싱턴 ‘미니트맨’ 동상 앞에서도 수백 명이 모여 “트럼프 행정부는 영국 왕정을 떠올리게 한다”고 외쳤다.

이번 시위는 지난 6월 첫 ‘노 킹스’ 시위 때보다 더욱 확산된 양상을 보였다. 당시 미국 50개 주에서 약 2000건의 시위가 있었지만, 이번에는 600개가 더 늘어난 2600건 이상이 진행됐다. 특히 농촌 지역에서의 참여가 두드러졌다. 이번 시위를 조직한 진보 단체 50501 소속 헌터 던은 뉴욕타임스에 “이번에는 단순한 대규모 동원에 그치지 않고 장기적 운동의 시작이라는 인식이 확산됐다”며 “이제 시민들은 이것이 단거리 경주가 아닌 마라톤이라는 점을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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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중심 펜실베이니아 에비뉴에는 ‘노 킹스(No Kings)’ 시위에 참석하려는 수만명의 사람들이 몰렸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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